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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한 달에 만 원으로 식비 줄이기: 최소한의 식생활 실험기

모든 것을 줄일 수는 없어도, 식비만큼은 줄여보고 싶었습니다. 무조건 참는 방식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한 달 동안 식비를 만 원으로 제한한 실험의 기록입니다. 굶지 않고 버티기 위함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만큼만 살아보는 감정과 실천의 실험이었습니다. 절약보다 더 큰 걸 얻은 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습관처럼 소비해 온 식사, 의도적으로 줄여보기로 했다.

식비를 줄여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 저는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은 ‘불필요한 걸 너무 많이 먹고 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일상이 불안할수록 식사는 보상이 되었고, 고단한 하루의 마무리를 달래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보상이 반복될수록, 제 안에는 이상한 허기가 쌓여갔습니다. 배는 부른데도 계속 뭔가를 먹고 싶었고, 식사는 점점 ‘행위’보다 ‘위안’에 가까워졌습니다. 저는 그 위안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소비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 ‘나는 지금 정말 필요한 만큼만 먹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질문을 품고, 저는 한 달 동안 식비를 단돈 만 원으로 제한해보기로 했습니다.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현실을 벗어난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며 살아보겠다는 실험이었습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먹을지보다 ‘무엇을 못 먹을까’가 더 크게 다가왔고, 장을 보러 가는 길마저 위축되었습니다. 단돈 만 원으로는 냉동식품 하나에도 신중해야 했고, 사소한 소비가 전부 죄책감처럼 느껴졌습니다. 음식은 여전히 매력적인 유혹이었고, 만 원이라는 한계는 그 유혹을 무시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장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굶겠다는 각오를 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현실적으로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쌀은 이미 집에 있었기 때문에 밥을 기본으로 두고, 반찬은 양파, 계란, 두부, 김치 정도로 구성했습니다. 상하기 쉬운 채소 대신 보관이 쉬운 식재료 위주로 계획을 짰고, 식사는 하루 한 끼 또는 두 끼로 줄였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거나, 허기를 인지하는 시간을 연습했습니다.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서서히 몸이 적응해갔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배고픔보다 ‘먹고 싶은 욕망’을 견디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욕망은 단지 음식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풍요로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식사, 스트레스를 풀어주던 당류,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all of these가 저를 위로해주는 방식이자, 제 감정을 무마시키는 수단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먹지 않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그런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그 감정이 덜어졌을 때 비로소 제 식사는 진짜 필요한 것만 남은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음식의 양을 줄이는 실험이 아니라, 저 자신을 돌아보는 감정의 구조가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달에 만 원으로 식비 줄이기: 최소한의 식생활 실험기

단순해진 식사가 삶의 리듬을 바꾸었다.

며칠을 버티고 나니, 식사는 점점 단순해졌습니다. 아침을 생략하고 점심과 저녁 중 한 끼만 제대로 챙기는 방식으로 조정했고, 식사는 늘 비슷한 조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밥 한 공기, 계란 하나, 두부 조금, 김치 약간. 처음에는 반복되는 메뉴에 질릴 것 같았지만, 오히려 단순한 조합 덕분에 식사의 목적이 명확해졌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만큼만 살아가는 행위’였습니다. 그렇게 식사는 에너지 보충 이상의 의미를 갖기 시작했고, 매번의 식사는 나 자신을 가장 최소한으로 돌보는 하나의 리추얼이 되었습니다.

특히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과정이 짧아지자, 하루의 리듬이 단순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메뉴를 고르고, 배달 앱을 열고, 혹은 마트에 가서 재료를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꽤 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할 게 줄어드니 에너지도 아끼고, 스트레스도 줄어들었습니다. 오늘 뭐 먹지? 라는 질문이 사라지자 놀랍게도 하루가 더 부드럽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식사에 대한 선택지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감정의 기복도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식사는 양이 아니라 '리듬'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감정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한 실험’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저는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포기할 때 생기는 불필요한 고민, 실망, 충동 같은 감정들이 사라졌습니다. 단조로운 식단 덕분에 오히려 안정감이 생겼고, 소박한 식사를 하면서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식사는 점점 더 작은 것에 감사하고, 자신을 돌보는 기본 단위로 바뀌어 갔습니다. 하루 한 끼의 정성을 다하는 일은, 예산보다 더 중요한 자기 존중의 감정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식사 안에서도 작은 창의성이 생겼습니다. 계란을 삶지 않고 지단으로 썰어 보기도 하고, 양파를 구워서 단맛을 끌어내 보기도 했습니다. 있는 재료 안에서 색다른 조합을 시도해보는 그 과정은 어쩌면 요리보다도 더 재미있었습니다. 제한이 있다고 느끼기보다, 제한 덕분에 창의성이 피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못 먹는 게 많다’는 생각보다 ‘이 안에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자주 들었고, 그것이 오히려 식사를 즐기는 방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결국 식비를 줄인다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전환’이었습니다. 줄어든 예산이 곧 나의 삶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덜어낸 것만큼 더 또렷해지는 감각과 여백이 생기는 과정이었습니다. 만 원이라는 숫자보다 훨씬 더 큰 걸 얻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저에게 단지 생존을 넘어선 ‘자기 리듬’을 만들어가는 힘이었습니다.

 

덜 먹으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

처음에는 식비를 줄이는 일이 단지 경제적인 실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 변화는 식사 외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식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식사와 나의 식사를 비교하지 않게 되었고, SNS에 넘쳐나는 먹방 영상이나 화려한 레스토랑 사진들도 더 이상 부럽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나는 왜 저런 식사를 못하지?’라는 비교감이 들었겠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한 방식의 만족감이 더 컸습니다. 더 이상 외부 기준으로 나의 삶을 평가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감정의 중심이 내 안으로 조용히 이동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비에 대한 감각도 달라졌습니다. 식사에 돈을 쓰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분야에서도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커피 한 잔, 편의점 간식, 갑작스러운 배달 음식—all of these가 충동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어떤 소비도 더 이상 습관이 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일상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식비를 줄이는 실험이었지만, 결국에는 전체적인 소비 습관의 감정적 거리두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단순한 식사가 저를 단순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의식적으로 삶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관계에서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들고, 혼자 먹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처음엔 고립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요함 속에서 나 자신과의 관계가 더 진해졌습니다. 누군가와의 식사에서 오는 긴장감, 대화의 피로,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선택들이 사라지니, 저는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식사에 감정적으로 안정되는지를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외부에 맞추던 시선이 안으로 향하면서, 저는 조금씩 외롭지 않은 혼자됨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강하게 느낀 건 음식을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삶도 덜 집착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배고픔을 참는 것이 아니라, 허기짐에 대응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한 끼를 충분히 감사하며 먹고 나면, 그 날 하루가 괜찮게 흘러갔다는 느낌이 들었고, 불필요한 감정 기복도 사라졌습니다. '더 많이 먹어야 만족스럽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저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기준은 식사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더 많이 가지지 않아도, 더 많이 성취하지 않아도, 지금의 나로서 충분하다는 존재에 대한 긍정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식비 절약이 아닌, 존재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저는 다시 예전처럼 소비할 수 있는 상황으로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 만 원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 제한은 없었고, 원한다면 외식도, 배달도, 풍성한 장보기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해방감’보다는 내가 만든 질서 안에 머물렀던 그 한 달이 더 그리웠습니다. 꼭 참고 살아야 했던 것도 아니었고, 대단히 건강해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 시간에는 제 감정과 욕망을 스스로 다룰 수 있다는 자존감이 있었습니다. 그 자존감이 어떤 미각보다 강한 포만감을 주었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단순한 식비 절약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무엇을 먹는지보다 왜 먹고 싶은지,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를 관찰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외롭거나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더 많이 먹습니다. 저는 그 메커니즘을 아주 가까이서 목격했습니다. 어떤 날은 조금만 허기가 와도 곧바로 식사를 하고 싶었고, 어떤 날은 감정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무언가를 입에 넣고 싶었습니다. 그런 날들을 지나며 저는 감정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소비하는 습관을 하나하나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비워진 자리에는 의외로 풍요로운 감정의 질서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동안 식사는 아주 작고 조용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심지어 설거지를 하는 순간조차도 전보다 훨씬 느리고 집중된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식사 시간이 늘 '생산성의 빈틈'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제 감정을 돌보는 소중한 루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성비가 아닌 감정의 가치로 식사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경험은, 이후에도 제가 선택을 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비용보다 감정, 양보다 리듬, 만족보다 존중—이 기준은 단순히 음식뿐 아니라, 모든 일상 선택에 그대로 확장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한 달 만 원으로 식비를 줄이는 실험은 제가 얼마나 ‘적게 가져도 괜찮은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습니다. 꼭 넉넉하지 않아도, 꼭 갖추지 않아도, 저는 제 감정과 리듬을 통해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실험은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제 안에서 작고 조용한 원칙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때로는 풍성하게, 때로는 단촐하게 식사를 합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그 한 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 지금의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